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1

윤여동설 - 신라 김알지와 김허루갈문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김알지와 김허루갈문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4대 탈해이사금 9년(A.D.65) 조를 보면,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나무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날이 새자 호공을 보내 보았더니 나뭇가지에 조그만 금궤가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그대로 보고하자 왕이 사람을 시켜 궤를 가져다가 열었더니 어린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위엄이 있었다. 왕이 기뻐하여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이 아니겠느냐?’하고는 곧 거두어 길렀다. 그가 자라매 총명하고도 지략이 많았으므로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하고 그가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

카테고리 없음 2013.10.28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지석 마지막 글자의 의미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지석 마지막 글자의 의미 - 최초주장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지석]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이 62세로 계묘년(A.D.523) 5월 7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A.D.525) 8월 12일에 이르러 관위에 어울리는 대묘를 조성하고 안치하였는 바 그 내용은 좌측과 같다. ?( 마지막 이 글자는 아직 해독한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무령왕지석의 맨 마지막에 새겨져 있는 글씨는 과연 무슨 글자인 것이며, 무슨 의미로 지석의 맨 마지막에 새겨 놓았던 것일까? → 屛 이는 “屛(병)”자로서 “황공하옵니다”라는 의미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이 왕이 죽고, 죽은 왕을 땅 속에 묻어야 하고 또 그러한 내용의 지석을 써야 하는 일이 매우 황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인데, 이는 ..

카테고리 없음 2013.10.04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초기강역과 제후국의 위치 확인하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초기강역과 제후국의 위치 확인하기 - 최초공개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記)를 보면, 고조선의 초기강역 즉 고조선(왕검조선)이 건국된 지 약 10여년 후의 기록에 그 강역에 대하여,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에 닿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기록에서 대황이란 커다란 사막지역 또는 큰 황무지라는 의미이고, 알유란 중국의 전설 속 괴물로서 중국의 북쪽 지역에 살았으며, 용의 머리와 호랑이의 발톱을 가지고 있고,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아마 흉노족을 말하는 듯 하고, 해대란 청주지역 즉 지금의 산동반도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창해란 지금의 발해 요동만 부근, 또..

카테고리 없음 2013.09.28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위 지도를 보면 우리 민족의 중심강역이 지금의 대흥안령 줄기 남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환국의 중심은 우하량 선사유적지가 있는 능원 부근으로 보이고, 환웅 배달국의 도읍 신시(神市)의 위치는 태백산 신단수 아래라고 하였는데, 내봉골 적봉 부근으로 비정되며,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의 위치에 대해서는, 규원사화 단군기에,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서남쪽(필자주 : 동남쪽의 오기가 아닐까?) 우수하 언덕에 정하고 왕검성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태백산 부근이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우수하 가에 산지 10년 만에 도읍을 백산의 남쪽과 패수의 북쪽으..

카테고리 없음 2013.09.06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토함산 석굴암 천정 뚜껑돌(감개)은 무엇을 형상화 한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토함산 석굴암 천정 뚜껑돌(감개)은 무엇을 형상화 한 것일까? - 최초주장 신라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경주 석굴암(?). ☆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 경주 석굴암 천정을 마감한 뚜껑돌이 세 조각으로 깨어져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삼국유사 효선 제9 “대성 효2세부모 신문왕대”의 기록 즉 “장차 석불을 조각하고자 하여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개를 만드는데, 돌이 갑자기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애석하게 여기다가 잠깐 졸았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다시 만들어 놓고 돌아갔으므로 대성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급히 남쪽 고개로 달려가서 향을 태워 천신을 공양했다...

카테고리 없음 2013.08.23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 모도왕, 곤지왕자, 동성왕, 무령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 모도왕, 곤지왕자, 동성왕, 무령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힌다 - 최초주장 [반도백제 무광왕과 왕비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의 위치] [대륙백제] 13대 근초고왕 12대 계왕 ↓ ↓ [반도백제] 14대 근구수왕 시조 무광왕 ..............................I.................... ↓ ↓ ↓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실명) ↓ ↓ 17대 아신왕 ?(실명) ↓ ↓ 18대 전지왕 ?(실명) I............................................ ↓ ↓ ↓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모도왕 ...............I................... ↓ ↓ ↓ 21대 개로왕(근개루왕) 22대 문주왕 곤지 ...

카테고리 없음 2013.08.17

윤여동설 - 쌍계사 진감선사비 이수에 새겨진 두전(頭篆)의 첫 글자는 당(唐)" 자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쌍계사 진감선사비 이수에 새겨진 두전(頭篆)의 첫 글자는 "당(唐)" 자가 아니다 - 최초주장 有唐新羅國故知異山雙谿寺 敎諡眞鑑禪師碑銘(유당신라국고지리산쌍계사 교시진감선사비명)을 보면, 『선사의 법휘는 혜소(慧昭)이며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그 선조는 한족(漢族)으로서 산동(山東)에 살았는데, 수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요동)를 정벌할 때 많은 군사들이 고구려군에게 죽자 항복하여 변방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나라가 4군(요서군, 우북평군, 어양군, 상곡군을 말하는 듯)을 차지하자 (선사의 선조는) 지금의 전주 금마사람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감선사의 선조는 한족이었고, 원래 산동(지금의 산동성) 출신이었으며,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쟁 중에 항복하여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

카테고리 없음 2013.08.01

윤여동설 - 의문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대성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의문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대성터 - 최초공개 지금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에 가면 중국 학자들이 요 중경대정부(遼 中京大定府) 유지(옛터)라고 명명하고 표지석을 세워 놓은 커다란 옛 토성터가 있다. 그리하여 지금 그 표지석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 옛 토성터가 진짜 요 나라 때의 중경대정부 터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거란(요)은 후진의 석경당으로부터 연운 16주를 할양받음으로써 대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연운 16주는 산서성 북부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요나라의 중심 강역은 산서성 북부로부터 그 북쪽 내몽골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지금의 적봉 부근은 요나라의 중심강역이 아닌 것이다. [동진단지리도에는 연운 16주의 위치가 지금의 북경부근으로부터 서쪽으로 태원, 오대..

카테고리 없음 2013.07.26

윤여동설 - 이사지왕(尒斯智王)은 누구인가?

윤여동설 - 이사지왕(尒斯智王)은 누구인가?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금관총이 신라 어느 왕의 왕릉이었을 것이라고 말들하고 있지만 신라 56명의 왕 중에 이사지왕이라는 왕은 없었다. 그렇다면 금관총은 신라의 왕릉이 아니라 이사지라는 왕의 능이라는 말이 된다. 필자는 일찍이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왜냐하면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주에 있는 옛 고총들은 과연 누구의 무덤일까? 필자가 보기에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의 신(新)나라가 멸망한 후 쫓겨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세운 흉노족왕조의 왕릉들일 것이고, 이사지는 투후 김일제의 후손 중 이사지왕이라..

카테고리 없음 2013.07.05

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에는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의 위치가 잘못 그려져 있다. 왜냐하면 후한서에 어양군은 낙양동북2000리, 우북평군은 낙양동북 2300리,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고구려 조를 보면,  “건무 25년(A.D.49) 봄 구려가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약탈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융[祭肜 : 삼국사기에는 蔡彤(채동)으로 되어 있다]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밖으로 철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구려(고구려)가 후한을 침공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는 고..

카테고리 없음 2013.06.22

윤여동설 - 백제 백옥 산출지 섭라(涉羅)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백옥 산출지 섭라(涉羅)를 찾았다 - 최초공개 [백옥산지인 대석와진에 있는 옥을 다듬는 석신상 : 오른손잡이인 석신의 다리 위치가 반대로 조각되어 있어 어색하다. 저런 자세로는 돌을 다듬는 힘든 일을 하기가 어렵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A.D.504) 조를 보면, “여름 4월 위(북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더니 위(북위) 세종이 우리 사신 예실불을 동당에서 접견하였다. 예실불이 세종의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황금은 부여(동부여)에서 산출되고, 백옥은 섭라에서 산출되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에게 빼앗겼고, 섭라는 백제에게 병합되었기 때문에 금과 옥이 왕부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적국 탓입니다’ 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북위의 도읍은 낙양이었다. 한마디..

카테고리 없음 2013.04.29

윤여동설 - 연운 16주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연운 16주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연운16주의 동쪽에 위치한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고, 안동부는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인데, 고구려,신라,백제,옥저를 그 동쪽 가까이에 그려 놓았다. 지금의 북경이 고대의 요동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인데, 중국 사서들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함께 요동 동쪽 1천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의 고구려와 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필자의 주장과 일치한다] [한반도는 산동반도의 동쪽에 위치하나, 위 동진단지리도 속 고구려, 백제, 신라, 옥저, 여진은 산동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안동부는 지금의 중국 북경] [한나라 요동군, 당나라 안동부는 지금의 북경일원을 말하는 것인데, 그 동..

카테고리 없음 2013.04.13

윤여동설 - 우북평군 백랑현(白狼縣)에서 발원하는 백랑수(白狼水)와 요수(遼水) 상류의 백랑수(白浪水)는 서로 다른 강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북평군 백랑현(白狼縣)에서 발원하는 백랑수(白狼水)와 요수(遼水) 상류의 백랑수(白浪水)는 서로 다른 강이다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 우북평군(右北平郡) 백랑현 조를 보면, “白狼 莽曰伏狄 師古曰 有白狼山故以名縣(백랑현을 왕망은 복적이라 하였다. 안사고는 백랑산이 있어 현의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북평군 백랑현에 백랑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우북평군이 어디를 말하는지 정확히 밝힌 사람이 없었고, 따라서 우북평군 백랑현의 위치도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드디어 우북평군의 정확한 위치를 찾은 듯한데, 우북평군은 지금의 하북성 성도인 석가장시 북쪽부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과 전..

카테고리 없음 2013.03.31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의 위치 - 최초주장 사기 조선열전과 전한서 조선전을 보면,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석해 보면, “연왕 노관이 (한나라에)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위만)도 망명하였는데, 무리 천여명을 모아 추결을 하고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넘고 패수를 건너 (조선왕 준에게 망명하고 돌아와 준이 배치해 준), 진고공지상하장에서 살았다” 라는 뜻이다. ☆ 위략에 “(조선왕)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왕위에 올랐다.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항(진승과 항우)이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燕), 제(齊), 조(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점점 준에게 망명해오자 준..

카테고리 없음 2013.03.24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사기 흉노전을 보면, “진(秦)나라가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장성을 쌓아 호(胡)를 막았다”고 하였고, : 이것이 춘추전국시대 진장성이다. ☆ 농서는 농산(隴山)의 서쪽지역으로서 지금의 감숙성 난주 부근을 말하고,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의 북쪽 유림시 부근을 말한다. “조 무령왕(B.C.325-299)이 또한 풍속을 바꾸어 호의 복장을 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북쪽으로 임호, 누번을 격파하고 장성을 쌓아 대(代)에서부터 음산(陰山)기슭을 따라 고궐(高闕)에 이르기까지 새(塞)를 만들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하였다"고 하였으며, : 이것이 춘..

카테고리 없음 2013.03.16

윤여동설 - 삼국사기의 미스테리한 신라왕위계승 기록의 비밀이 풀렸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의 미스테리한 신라왕위계승 기록의 비밀이 풀렸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왕위계승에서 연도를 따져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록들이 아주 많다. 대표적으로 신라 5대 파사왕을 3대 유리왕의 둘째아들이라고 했다던지, 9대 벌휴왕을 4대 탈해왕의 아들인 구추각간의 아들이라 했다던지, 13대 미추왕을 구도의 아들이라고 했다던지, 17대 나물왕을 구도갈문왕의 손자라고 기록한 것 등이다. 그리하여 아직까지도 신라왕위계승도를 정확하게 그려 완성시킨 사람이 없다. 그런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왜 왕위계승 기록을 그렇게 기록했는지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그 이유를 눈여겨 살펴보지 않고는 기록이 이상하다고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삼국사기 신..

카테고리 없음 201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