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891

윤여동설 - 발해의 마지막 불꽃 흥요국(興遼國)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발해의 마지막 불꽃 흥요국의 위치 - 최초공개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당나라 무후 때에 고구려(속말말갈이라고도 한다) 사람 대조영이 나라를 세우자 당나라 예종은 그를 발해군왕에 봉했다. 그리하여 그 후로 발해국이라 부르게 되었고, 부여, 숙신 등 10여 나라를 모두 차지하고 5경 15부 62주를 두었으니 땅이 사방 5천여리의 대제국이 되었다. ☆ 발해는 대흥안령산맥 부근이 중심 강역이었고, 5경이란 상경용천부(파림좌기부근), 중경현덕부(파림우기부근), 동경용원부(고륜기부근), 서경압록부(밀운수고 부근), 남경남해부(옹우특기부근)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압록강 북쪽 만주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모두 만리장성이 시작된 지금의 산해관 북쪽 지역에 위치했다. 그러다가 서기 926년 1월에 이르러 ..

카테고리 없음 2007.11.29

윤여동설 - 궁예왕의 나라 태봉국 - 사라진 흔적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사라진 흔적 궁예왕의 나라 태봉국 - 최초주장 [궁예의 도읍 철원 풍천원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평천] 삼국사기 열전 궁예 전을 보면, "궁예는 신라 사람이니 성은 김씨요, 아버지는 47대 헌안왕이요,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혹자는 궁예가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궁예가 신라 왕자 신분이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그의 아버지가 헌안왕인지 경문왕인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말기에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정정이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 앞서 난을 일으켜 43대 희강왕을 죽게 하고 왕위에 오른 44대 민애왕을 김양, 장보고 등이 합심하여 제거하고 45대 신무왕을 세웠으나 재위 6개월만에 등창이 나서 죽..

카테고리 없음 2007.11.26

윤여동설 - 후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후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백제가 멸망한지 230여 년이 지난 서기 892년에 이르러 견훤이 백제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후백제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의심없이 후백제가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가 신라의 서쪽인 옛 진번군 남쪽 땅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 백제의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 평양성이 옛 왕검성이었다면 우리 역사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 사서들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 기록되어 있고,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신라가 한반도가 아닌 장성이 ..

카테고리 없음 2007.11.25

윤여동설 - 고려는 천리장성을 한반도에 쌓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는 천리장성을 한반도에 쌓지 않았다? - 최초주장 고려는 9대 덕종 2년인 서기 1033년 8월에 이르러 거란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평장사 유소에게 명하여 천리장성을 쌓게 했는데,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과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중간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 흥화(興化), 정주(靜州), 영해(寧海), 영덕(寧德), 영삭(寧朔), 운주(雲州), 안수(安水), 청새(淸塞), 평로(平虜), 영원(盈遠), 정융(定戎), 맹주(孟州), 삭주(朔州) 등 13주를 거치고 요덕(耀德), 정변(靜邊), 화주(和州) 등 3성에 대어 동쪽으로 바다에 닿으니 길이가 1천여 리에 뻗치고, 돌로 성을 쌓았으며, 높이와 두께가 각각 25척(성벽의 높이가 7-8m이고, 성벽의 두께도 7-8..

카테고리 없음 2007.11.23

윤여동설 - 지금의 요동(遼東)은 옛 요동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요동(遼東)은 옛 요동이 아니다 - 최초주장 요동(遼東)이란 요의 동쪽 또는 요수의 동쪽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요하의 동쪽을 요동이라 하고, 요하의 서쪽을 요서라 한다. 그러나 원래의 요동군은 지금의 중국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동쪽으로 2-3천리쯤 떨어진 지금의 요하가 요수였을 것으로 생각함으로써 요동군이 요하의 동쪽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었고, 역사적으로 우리와 중국과의 서쪽 경계가 지금의 요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수경에는 "대요수는 요새 밖 백평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요새로 들어가(통과하여) 요동 양평현 서쪽을 지나며 또 동남쪽으로 흘러 방현 서쪽을 지나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안평현 서남쪽을 지나..

카테고리 없음 2007.11.20

윤여동설 - 백제의 백강(白江)은 지금의 한반도 금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백강(白江)은 지금의 한반도 금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당나라의 소정방이 타고 올라와 백제를 멸망시킨 백강(白江)은 지금의 난하하류 우리는 지금 서기 660년에 당나라의 소정방이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서해바다를 건너 지금의 금강을 타고 올라가 충남 부여의 사비성을 공격해 백제를 멸망 시켰다고 역사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소정방과 김법민이 만난 덕물도를 지금의 덕적도일 것이라 하고, 당나라군이 타고 올라온 백강구를 금강 하류일 것이라 하며,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합류한 기벌포를 충남 서천, 군산, 강경 쯤일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백제 멸망시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탄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황산이 어디를 말하는지, 기벌포가 어디를 ..

카테고리 없음 2007.11.18

윤여동설 - 백제의 한수(漢水)는 지금의 한반도 한강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한수(漢水)는 지금의 한반도 한강일까? - 최초주장 백제의 온조왕은 나라를 세우고 13년째인 기원전 6년에 이르러, "나라의 동쪽[에는 신라가 있고, 서쪽에는] 낙랑이 있으며,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서 변경을 침공하기 때문에 편안한 날이 적다. 내가 어제 나가서 순행하다가 한수(漢水)의 남쪽 토양이 비옥한 것을 보았으니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영구히 편안할 계책을 도모하여야 하겠다" 하고는 다음해 정월 위례성에서 한수 남쪽(하류)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한성(南漢城)이라고 하게된다. 이렇게 한수(漢水)는 우리의 삼국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는 비류와 온조가 패수와 대수를 건너 한산 부아악에 올랐다는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설화와 고구려 건국설화를 읽고, 졸본을 지금의 환인, 패수를..

카테고리 없음 2007.11.15

윤여동설 - 정감록의 십승지지는 한반도에 없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정감록은 한반도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다 - 최초주장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신 속에 의식, 무의식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라면, 예언서(비결서)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정감록(鄭鑑錄)을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전해진 정감록으로 총칭되는 예언서(비결서)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대표적인 것이 감결(정감록 비결이라고도 한다)인데, 누구에 의해 쓰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심, 연 형제와 정감이라는 세 사람이 함께 산천을 유람하며 지세를 논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에 "평양은 이미 천년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으로 옮겨졌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쓰여..

카테고리 없음 2007.11.14

윤여동설 - 살수(薩水)는 한반도 청천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살수(薩水)는 한반도 청천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강물이 구불구불 흐르는 모양이 마치 스님들의 머리모양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살수(薩水 보살살 물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을지문덕이 우문술의 군사가 굶주린 기색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피로하게 하려고, 싸우고는 도망하고 또 싸우고는 도망하곤 하여, 우문술이 하루 일곱 번 싸워 모두 이겼다. 그들은 계속 이기자 자신감이 생겼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못 이겨 동쪽으로 진군하여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산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을지문덕이 다시 사람을 보내어 거짓 항복하는 체 하고 우문술에게 청하기를 '만약 군대를 돌려세운다면 왕을 모시고 황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예방하겠다' 하였더니 우문술이 자기 군사들이 피..

카테고리 없음 2007.11.12

윤여동설 - 강물색이 오리의 머리색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 압록강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강물 색이 청둥오리의 머리색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 압록강 - 최초주장 지금 한반도와 중국과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강의 이름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다. 그 중에서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그런데 한원 번이부 고구려(翰苑 藩夷部 高[句]麗) 조를 보면, "후한서와 그 지리지에 이르기를 '현토군 서개마현 마현의 마자수는 서북쪽에서 염난수로 흘러 들어와 서남쪽으로 서안평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길이가 2천1백 리이다' 라고 하였고, 응소(應邵)는 말하기를 '마자수는 서쪽에서 염택(鹽澤)으로 흘러 들어온다'고 하였다. 고(구)려기에도 '마자수(馬자水)를 고구려에서는 일명 엄수(淹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이름은 압록수라고 하고, 물고기가 떠올랐다'고..

카테고리 없음 2007.11.09

윤여동설 - 패수(浿水)는 한반도 대동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패수(浿水)는 한반도 대동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패수(浿水)는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 강이다. 패수를 제대로 찾아야만 우리는 수수께끼 같이 전해진 우리 옛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의 대동강이 옛 기록 속의 패수라고 하고,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지금 북한의 평양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하고 있는데, 우리 역사를 조금만 깊이 연구해보면 우리 역사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점이 대륙인 것을 모르고, 모든 역사 기록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 해석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는데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

카테고리 없음 2007.11.08

윤여동설 -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 최초주장 [지금의 북경(베이징) 일원이 고대의 요동이었고, 영정하가 고대의 요수였다] 요수(遼水)는 우리 고대 역사 강역의 서쪽 경계를 밝혀줄 중요한 강의 이름 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를 놓고 논란이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요하가 옛 요수라는 주장으로부터, 그 서쪽의 대릉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고, 대릉하 서쪽의 난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며, 난하 서쪽의 조백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고, 북경 서쪽의 영정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며, 심지어 어느 사람은 황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듯 주장들이 각각이라는 것은 아직 옛 기록 속의 고대 요수를 정확히 찾지 못했다는 말로써, 그 강의 위치를 제대로 찾으면 우리 고대 역사 속의 서쪽 경계를 ..

카테고리 없음 2007.11.07

윤여동설 - 윤관장군이 쌓은 고려 동북 9성의 위치를 찾아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윤관장군이 쌓은 고려 동북 9성의 위치를 찾아라 - 최초주장 [척경입비도 : 고려의 윤관장군이 1108년에 여진을 정벌하여 9성을 쌓은 후 공험진 선춘령에 고려지경이라 새긴 척경비를 세우는 장면을 그린 그림] 여진은 본래 말갈의 일족으로서 산림과 잡목지대에 흩어져 살며 아직 통일되지 못하고, 고려의 북쪽지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원래는 숙신이었는데 고구려에 예속되었다가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가 서자 발해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발해가 요나라에 의해 멸망당하자 뿔뿔이 흩어져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고려가 건국되자 옛 발해 유민의 일부는 고려로 귀부했으나 여진은 고려에 속하지 않고 고려의 변방을 약탈하는 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고려는 여진이 변방을 괴롭히는 무리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카테고리 없음 2007.11.05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의 절은 백제 무광왕이 세운 제석정사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의 절은 백제 무광왕이 세운 제석정사일 가능성 - 최초주장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는 제석사지에 깨어진 탑의 심초석만 남아 있다] [반도백제 무광왕릉과 왕비릉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 삼국사기 기록 상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서 불교가 맨 처음 전래된 나라는 고구려로서 17대 소수림왕 2년인 372년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록을 보면, "2년(A.D.372) 여름 6월 진(前秦)나라왕 부견이 사신과 중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토산물로서 답례했다" "4년(A.D.374) 중 아도가 왔다" "5년(A.D.375) 봄 2월 처음으로 초문사를 창건하여 순도가 있게 하고,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아도가 있게 하니 이것이 해동불법의 시초이다" 라고..

카테고리 없음 2007.11.01

윤여동설 - 고대 왜국(倭國)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왜국(倭國)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우리 고대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사서들에도 많은 기록이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위치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동양 역사의 미스테리 중 하나가 바로 고대 왜국(倭國)의 위치다. 그리하여 지금의 일본열도에 왜국이 옛부터 위치했다고 믿고 있는 일본 학자들은 한반도 남쪽에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었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느 사람은 중국 남쪽에 고대 왜국이 위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며, 또 어느 사람은 발해 중에 고대 왜국이 있었는데 발해가 윤몰되어 바다속에 가라앉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이렇듯 전혀 다른 주장들을 하게 되었는지 사서의 기록들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데, 사실 옛 기록들은 왜국의 위치에 대하여 ..

카테고리 없음 2007.10.29

윤여동설 - 왜국의 건국년도를 600년 앞당겨 조작한 일본서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왜국의 건국년도를 600년 앞당겨 조작한 일본서기 - 최초주장 신당서 일본 전을 보면, "그 왕의 성은 아매씨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가 「천어중주」라고 한다. 언렴에 이르기까지 무릇 32세였는데 대개「존」이라 불렀고 축자성에서 살았다. 언렴의 아들 신무가 왕위에 올라「천황」이라 바꾸고 도읍을 대화주로 옮겼다. 뒤를 이어 수정, 안녕, 의덕, 효소, 천안, 효령, 효원, 개화, 숭신, 수인, 경행, 성무, 중애로 이어졌는데 중애가 죽자 개화의 증손녀 신공이 왕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응신, 인덕, 이중, 반정, 윤공, 안강, 웅략, 청녕, 현종, 인현, 무열, 계체, 안한, 선화, 흠명이 왕위에 올랐다. 흠명 11년에 양나라에 조공을 바쳤는데 이때가 승성 원년(A.D.552)이었다. 뒤를 ..

카테고리 없음 2007.10.28

윤여동설 - 위화도회군과 조선의 개국 그리고 한양천도에 숨겨진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화도회군과 조선의 개국 그리고 한양천도에 숨겨진 비밀 - 최초주장 이성계는 1361년 10월에 독로강만호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공민왕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고, 홍건적의 침입 때는 사병 2천을 이끌고 개경에 맨 먼저 입성했다. 또한 고려가 1258년 원나라에게 빼앗겼다가 1356년에 탈환한 쌍성총관부를 1362년 2월에 이르러 원나라가 재탈환하기 위하여 여진장수 나하추로 하여금 수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려를 침입하자 공민왕은 동북면 도지휘사로 하여금 그를 막게 했으나 계속 패배하자, 7월에 이성계를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하여 나하추를 막게 했다. 그러자 이성계는 침공군을 전멸시켰고 나하추는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친 후 원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명나라에 투항해야만 했다. 이후 이성계는 왜..

카테고리 없음 2007.10.27

윤여동설 - 훈요십조 제8조는 한반도의 전라도를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훈요십조 제8조의 "차현이남 (車峴以南 ) 공주강외(公州江外)"는 한반도의 전라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고려의 건국시조 왕건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했던지 서기 943년 4월에 대광인 박술희를 불러 자기가 이루어 놓은 고려를 후손들이 그르칠까봐 걱정되니 자신의 후예들이 아침 저녁으로 펴보고 귀감으로 삼게 하라 하면서 자신이 직접 지은 "훈요 십조"를 주고, 5월에 이르러 67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런데 훈요십조 중 제 8조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논란의 중심에 "차현과 공주강"이 자리하고 있다.      훈요십조 제 8조의 전체적 내용은,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밖의 산 모양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 ..

카테고리 없음 2007.10.26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 최초공개 [이글은 윤여동 밝힘 "고려와 조선 역사의 특급비밀" 책에서 발췌한 것임] 송나라 휘종 때 사람인 서긍이 서기 1123년 사신 일행으로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의 위치에 대하여, “고려는 남쪽은 요해, 서쪽은 요수까지이고, 북쪽(사실은 서북쪽)은 거란 옛 땅, 동쪽(사실은 동북쪽)은 금나라와 접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과 같이 서로 맞물려 있다.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현재의 나주와 광주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려는 우리 송나라 수도(당시 송나라의 도읍은 개봉이었다)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에서 육로를 거치..

카테고리 없음 2007.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