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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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이왕은 백제판 수양대군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이왕은 백제판 수양대군인가? - 최초주장 백제 8대 고이왕은 왕위에 올라 백제의 기초를 충실하게 닦아 놓은 왕이다. 그리하여 어느 역사학자는 수서와 북사에 기록되어 있는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 중 강국이 되었다" 라는 기록과 연관시켜 백제가 실제 고이왕 때 건국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백제의 왕위 계승에 대하여 세밀하게 연구해보지 않고 말하는 엉터리 같은 주장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8대 고이왕 조를 보면,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왕위에 있은 지 21년에 죽고 그의 장자 사반이 왕위를 이..

카테고리 없음 2008.03.06

윤여동설 - 김헌창의 장안국(長安國)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김헌창이 세운 한달 왕국 장안국의 위치 - 최초주장     우리는 고려 인종 때인 1135년에 일어났던 묘청의 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때 묘청이 서경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 이름이 대위국(大爲國)이었으며,   또한 신라 헌덕왕 때인 822년에 일어났던 김헌창의 난을 알고 있고 그때 김헌창이 웅천주를 중심으로 꽤나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장안국(長安國)이라는 나라를 세웠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서경을 한반도 평양이라 하고,   웅천주는 충남 공주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묘청은 한반도의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고,   김헌창은 한반도의 충남 공주를 중심으로 충청, 전라, 경상남도 지역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웠던 것이었다고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08.03.04

윤여동설 -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어디에 장성을 쌓았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장성(長城)의 흔적 - 최초주장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장성(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한반도에서 장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후대인 고려시대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역시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 고려가 서기 1033년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보면,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과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중간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 흥화(興化), 정주(靜州), 영해(寧海), 영덕(寧德), 영삭(寧朔), 운주(雲州), 안수(安水), 청새(淸塞), 평로(平虜), 영원(盈遠), 정융(定戎), 맹주(孟州), 삭주(朔州) 등 13주를 거치고 요덕(耀德), 정변(靜邊), 화주(和州) 등 3성에 ..

카테고리 없음 2008.03.03

윤여동설 - 이병도가 정말 우리 역사를 왜곡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이병도가 정말 우리 역사를 왜곡했을까? - 최초주장 거란지도(아주 잘 그려진 지도는 아니지만 우측에 고려, 백제, 신라계라고 표시되어 있고, 우측 상단에는 장백산, 말갈, 발해, 여진 등의 명칭이 보이는 것으로보아 장백산은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을 말하는 듯 하다. 이 지도는 발해 주변에 대한 지도로서 북해란 곧 발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고지도(가라국과 유구국이 중국 남쪽에 위치했다고 잘못 그려져 있고, 황하가 발해가 아닌 동중국해로 흐른다고 그려져 있다[동중국해로 흐르는 것은 폐황하이다]. 북경이 표시되어 있고, 조선의 위치가 지금의 한반도로 그려져 있으며 백두산이 표기되어 있고, 장백산은 장성 북쪽에 그려져 있어 장백산과 백두산을 별개의 산으로 그려 놓았다. 조선이 대륙에서 한반도..

카테고리 없음 2008.02.29

윤여동설 - 고구려는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는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졌다 - 최초주장 재사(再思)는 유리왕 말기에 유리왕의 막내아들이었던 여진이 물에 빠져 죽은 후 유리왕의 양자가 되었던 사람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그는 원래 구려 사람으로서 원래 고씨였을 것이다. 재사는 성장하여 부여여인과 혼인을 하였고, 슬하에 궁을 낳았는데, 후일 궁이 고구려의 왕위에 오르게 된다. [삼국사기 기록상으로는 궁, 수성, 백고를 형제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제로 궁과 수성, 백고가 친형제였을지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혹시 궁의 조카가 수성이었고, 또 수성의 조카가 백고는 아니었을까?] 따라서 6대 태조대왕으로부터 28대 보장왕까지 고구려의 왕통은 모두 이 재사의 후손으로 이어졌으므로, 고구려의 왕실은 해씨[시조 주몽왕(추모..

카테고리 없음 2008.02.27

윤여동설 - 삼국시대에는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시대에는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막연하게 옛날에 고구려는 주로 평안도 말을 사용했을 것이고, 백제는 서울· 경기·충청·전라도 말을 사용했을 것이며, 신라는 경상도 말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느 영화에서는 백제의 계백장군은 전라도 말을 하고, 신라의 김유신장군은 경상도 말을 하는 것으로 각본을 만들어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는데, 삼국이 한반도에 존속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었다. 그러나 삼국의 건국지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 북경 부근이었다면 그 멀리 떨어진 곳과 한반도의 언어가 동일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당시 삼국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카테고리 없음 2008.02.25

윤여동설 - 신비의 나라 여인국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비의 나라 여인국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후한서 동옥저 전을 보면, "일설에 의하면 바다 가운데에 여국(女國)이 있어 남자가 없는데, 그 나라에는 신정(神井)이 있어 여자들이 그를 엿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동옥저 전에는, "왕기가 별도로 군사를 보내 위궁을 추격하여 동쪽 경계의 끝까지 갔을 때 그곳의 노인에게 '바다의 동쪽에 사람이 살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수십 일을 바람 부는 대로 표류하여 동쪽으로 흘러가서 한 섬에 도착했는데,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고, 그들의 풍속은 해마다 7월에 동녀(童女)를 구하여 바다에 던진다'고 했으며, ..

카테고리 없음 2008.02.24

윤여동설 - 신라의 동쪽에 정말 장인국(거인국)이 있었을까?

윤여동설 - 신라의 동쪽에 정말 장인국(거인국)이 있었을까? [위 : 사자를 고양이 다루듯 안고 있는 거인상] [위 : 거인의 유골 발굴 현장] 신당서 신라전을 보면, "신라는 변한의 먼 후예이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사는데, (땅의 크기가) 횡으로는 1천리, 종으로는 3천리이다. 동쪽은 장인(長人: 키가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닿고 동남쪽은 일본(왜), 서쪽은 백제, 남쪽은 바다(海)에 닿아 있으며,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 볼 때 경주 부근에 위치했었다는 신라의 동쪽에 장인국이 위치할 수 없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신당서의 기록을 오기로 보았고, 또 "장인은 그 키가 보통 사람의 세배쯤 되고, 톱니 이빨에 갈퀴손톱을 하고,..

카테고리 없음 2008.02.21

윤여동설 - 고구려가 백제(大陸百濟)를 백잔(百殘)이라 부른 이유는?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는 왜 백제(大陸百濟)를 백잔(百殘)이라 불렀을까? - 최초주장 광개토대왕 비문 영락 6년 병신년 조를 보면,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倦)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OO新羅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이라고 새겨져 있다. ☆ 위 기사 중 괄호 속의 글자는 원래 倦(게으를 권)자였으나 지금까지 이 글자가 글자 모양이 비슷한 倭(왜)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신묘년 기사의 해석을 놓고 한·일 간에 논란이 많았는데, 사실 이 조문은 왜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압록강 너머 집안에 있는 호태왕 비는 413년 10월에 광개토대왕이 죽자 아들인 장수왕이 그 다음해인 414년 갑인년 9월 29일에 아버지인 광개토대왕 평생의 훈적을 새겨 능 앞에 세운 훈적비로서 당시 고구..

카테고리 없음 2008.02.20

윤여동설 - 중국 구화산 화성사 등신불 김교각 스님의 신분을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중국 구화산 화성사 등신불 신라왕자 김교각 스님은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아들 김문주 - 최초주장 열반 후 등신불이 되어 지금까지도 중국 안휘성 구화산 화성사 육신보전에 모셔져 있으며, 중국 사람들이 지장보살의 화신이라 여겨 지장왕보살로 추앙하고 있는 신라왕자 김교각 스님의 신분에 대하여 김수충 일 것이라는 둥 논란이 많아 이 글을 올리는데, 구화산지의 기록대로라면 김교각 스님은 신라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많은 사람들이 김교각 스님이 김수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김수충은 신라 32대 효소왕의 유복자로서 어머니는 성정왕후였다. 그 아버지 효소왕이 죽었을 때 아직 태어나지 않아 숙부인 성덕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성덕왕은 장조카인 김수충을 태자..

카테고리 없음 2008.02.19

윤여동설 - 원나라가 고려 땅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원나라가 고려 땅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조선 태조 이성계. 그의 본관이 전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조상들은 원래 전주를 본향으로 삼고 그 부근에서 대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의 조상들은 원래 마한 사람이었다가 마한이 멸망하자 백제 사람이 되었고, 백제가 멸망하자 신라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성계의 먼 조상들이 백제나 마한에서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확실히는 알 수 없고, 한(瀚)으로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명사 조선 전을 보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유부(柳溥)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개조인 이단(이성계)은 본국 전주인 입니다. 28세조 한은 신라(필자주 : 통일신라)에 벼슬하여 사공(司空)이 되었는데, 신라가 멸망하자 6세손 긍휴(兢休)는 고려에 들어갔습..

카테고리 없음 2008.02.18

윤여동설 - 고구려의 도읍 황성과 장안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도읍 황성과 장안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부근의 지형도인데, 이 부근이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황성, 장안성 그리고 고려의 서경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동쪽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고, 난하가 옛 패수이다. 백제는 대륙인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서 13대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이었던 무광왕이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패한 무광왕이 서기 365년경 한반도로 건너와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건국함으로써 한반도에 백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대륙백제는 근초고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가다가 삼근왕 때 반도백제에..

카테고리 없음 2008.02.03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가 보인다(3)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가 보인다 (3) - 최초주장 [2편에서 계속] 백제의 근초고왕은 실제로 요서 진평현 땅을 차지했었다 송서 백제국전을 보면,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고, 백제는 요서를 차지했다. 백제가 다스리던 곳을 소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요서 진평군 진평현 땅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고, 양직공도 백제국사를 보면,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麗略有遼東樂浪 [百濟]亦 [略]有遼西晉平縣 自晉已來常修蕃貢 (백제는 옛날에 왔던 마한의 속국이었다. 진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 낙랑을 차지했고, [백제..

카테고리 없음 2008.01.31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1)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 (1) - 최초주장 백제 13대 근초고왕은 비밀의 왕국 백제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매우 중요한 왕이다. 지금 우리는 그가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강역을 이루었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으며, 백제 최초의 역사서도 만들었고, 이때부터 백제가 비로소 중국과 교류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백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아직까지도 근초고왕에 대하여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고, 그와 관련된 거의 모두가 논란 중에 있다. 즉 근초고왕의 이름이 무엇이고, 왕비는 누구이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그의 업적이 왜 20년 간이나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았고, 앞 왕이었던 계왕과는 무슨 관계이며, 중국으로부터 받은 작위는 무엇이..

카테고리 없음 2008.01.29

윤여동설 - 한반도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지방별칭 속에 숨겨진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지방별칭의 의미는? - 최초주장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우리는 지금 한반도 강원도를 관동, 관서지방(關東地方)이라 하고, 평안도를 또 관서지방(關西地方)이라고도 하며, 함경도를 관북지방(關北地方)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 지명의 의미는 관(關)의 동쪽 또는 서쪽 그리고 관의 북쪽에 해당하는 지방이라는 뜻으로서 어느 관 즉 관문을 중심으로 나누고 있고, 관북 (함경도) 관서 관서 관(관문) 관동 (평안도) (강원도서쪽지역) (강원도동쪽지역) 전라도를 호남지방(湖南地方)이라 하고, 충청도를 호서지방(湖西地方)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 지명의 의미는 호수의 남쪽 또는 호수의 서쪽에 위치하는 지방이라는 뜻으로서 어느 호수를 중심으로 나누고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08.01.28

윤여동설 - 문익점이 목화씨를 정말로 처음 가져왔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문익점이 정말로 목화씨를 처음 가져왔을까? - 최초주장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목화꽃과 목화다래 그리고 하얗게 벌어진 목화송이. 달빛 비치는 밤에 들판을 하얗게 수놓던 약간은 낭만적이기도 한 목화. 화학섬유에 밀려 지금은 목화를 재배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솜이불을 덮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시골에 가면 목화를 심는 집들이 꽤나 많았고, 이불은 거의 이 목화 솜으로 만들어 덮고 추운 겨울을 넘겼다. 특히 시집 보낼 딸을 둔 집에서는 반드시 목화를 심어 그 목화 솜으로 비단 원앙금침을 만들어 혼수품으로 보내곤 했는데,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동네 개구장이들이 그 목화다래를 따먹다가 목화밭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했다. ☆ 목화다래가 익어 벌어지기 전 푸를 때에는 수분도 많고..

카테고리 없음 2008.01.22

윤여동설 - 지구 대폭발

윤여동설 - 지구 대폭발 태초에 대우주는 한 덩어리였다. 그러다가 빅 뱅(BIG BANG : 대폭발)으로 인해 대우주가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져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지구였다. 빅뱅(대폭발) 직후 지구의 모습은 황량한 돌덩어리였을 것인데, 오랜 세월 자전과 공전을 계속하게 됨에 따라 둥그런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떠한 이유로 지구 표면에 물이 생겨나게 되고 지구는 물 속에 잠기게 된다. 옛 기록들이 태초에는 지구가 혼돈과 암흑이었고, 물로 뒤덮여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자 지구 내부 온도는 압력에 의해 올라가게 되고 바위가 녹아 마그마 형태로 바뀌게 되어 팽창력이 강화되고, 지구 표면은 그..

카테고리 없음 2008.01.21

윤여동설 - 장군총은 고구려 장수왕릉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집안의 장군총은 고구려 장수왕릉이 아니다 - 최초주장 지금 중국에서는 압록강 너머 길림성 집안에 거의 모든 고구려왕들의 능이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상황을 전혀 모르는 엉터리 주장이다.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평양성, 황성, 장안성)를 중심으로 그 부근을 차지하고, 서남쪽으로 최소한 북경을 지나 태행산맥 부근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서기 342년 8월에 평양성에서 환도성으로 이거했는데, 평양성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를 말하는 것이고, 환도성은 북경 북쪽 발해진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때 고국원왕이 환도성으로 이거했던 것은 중국이 통일왕조인 서진이 사라지고 5호16국으로 쪼개져 혼란스러워지자 고구려가 요동 쪽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

카테고리 없음 2008.01.18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발해국의 중심 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신당서 북적전 발해(新唐書 北狄傳 渤海)   발해(渤海)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부용 되어 있었으며, 성은 대(大)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을 차지하였다.  그 땅이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닿아 이하(泥河)를 국경으로 삼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고, 서쪽은 거란까지이다.  성곽을 쌓고 사니 고(구)려의 패잔병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만세 통천(A.D.696)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조문홰?)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 걸걸중상(乞乞仲像)이라는 자가 말갈의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 및 고(구)려의 남은 ..

카테고리 없음 2008.01.17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신라의 중심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신라의 중심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양서 신라전(梁書 新羅傳) 신라(新羅)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양나라와는) 서로 1만리쯤 떨어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 때 사람들이 고역을 피하여 마한으로 도망하여 가자, 마한에서는 동쪽 경계의 땅을 분할하여 주고 그들을 살게 하였는데, 그들이 진(秦)나라 사람이므로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그들의 언어와 물건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 비슷한데,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고(孤), 도둑을 구(寇),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며, 서로를 부를 때 모두 도(徒)라고 하여 마한과 같지 않다. 또한 진한의 ..

카테고리 없음 2008.01.16